"지난 25년 동안 나는 홍콩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목격했다. '일국양제(一國兩制)'는 새로운 것으로 전 세계서 다른 국가는 이 같은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최근 알란 지맨 홍콩 란콰이펑 그룹 회장은 중신사(中新社)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홍콩 조국 회귀 25주년을 기념하며 이 같이 말했다.

알란 지맨 홍콩 란콰이펑 그룹 회장[사진출처: VCG]

1960년대 말, 캐나다서 의류업에 종사하던 19세의 알란 지맨은 홍콩의 기성복을 캐나다로 수입해 판매하는 등 관련 분야에서 작은 성과를 이루었다. 한편, 1960~70년대 홍콩 섬유 산업이 왕성히 발전하기 시작했고, 또 낮은 세율의 매력에 이끌린 그는 홍콩으로 가서 새로운 사업을 하기로 했다.

그는 먼저 "이 도시에는 공장들이 많았고, 사람들도 바빴고, 특히 영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영국인들이 말하는 영어는 특유의 억양을 가지고 있어 내 것과 다르긴 했지만 재미있었다"며 홍콩에 처음 발을 디딘 당시 소감을 전하면서 "나는 이곳에서 모든 것을 향유하고 있다. 여기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곳이다. 캐나다에 있을 때는 현지 시장을 위해 봉사한 반면, 여기서는 세계를 위해 봉사한다"고 말했다.

란콰이펑에 위치한 한 술집[사진출처: VCG]

홍콩이 기타 글로벌 도시와는 달리 독특한 술집 거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1980년대 초, 센트럴 란콰이펑에 식당을 하나 차렸고, 이 식당은 현지인과 외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그는 여러 건물을 매입해 술집, 레스토랑 등을 운영하면서 현지를 저녁 유흥 문화의 핫 플레이스로 발전시켰다. 란콰이펑은 삽시간에 유명해졌고 그는 '란콰이펑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얻게 됐다.

그는 "중국은 아주 특별한 국가다. 나는 중국의 현대화와 성장을 지켜봤고, 우리 직원들이 점점 더 나은 삶을 즐기는 것을 목도했다"며 "경제특구로 지정된 선전은 지금 세계서 가장 좋은 도시 중 하나가 됐다. 푸둥은 상하이의 금융중심지가 됐다. 이것들은 당시로선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다. 내가 바로 참여자이자 목격자"라고 말했다.

40여 년 동안 중국서 생활한 그는 가족 모두 중국서 살고 있다. 홍콩은 이미 그의 집이 된지 오래다. 2008년 그는 캐나다 국적을 포기하고, 중국 국적을 취득해 홍콩 특별행정구 여권과 귀향증을 받았다.

인터뷰에서 그는 홍콩 조국 회귀 25주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며 "'일국양제' 아래, 홍콩이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사법 독립이다. 이곳은 세계 여러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영미법 전통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금융시장을 발전시키고, 외국 우수 인재와 기업을 유치하는 데 유리하다. 홍콩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난 홍콩이 계속 강해질 것이라 본다. 글로벌 기업이 신뢰하는 국제금융센터인 이곳에서 우리는 제대로 융합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란콰이펑 거의 일각[사진출처: VCG]

이어 "홍콩은 웨강아오대만구(粵港澳大灣區)에서도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선전, 마카오, 광저우 등 주요 도시와도 지리적으로 가깝다"며 "향후 세계 각지의 많은 인재들이 웨강아오대만구를 찾을 것이고 현지는 활기로 가득찰 것"이라고 내다봤다.

끝으로 그는 홍콩이 경험한 25년간의 '일국양제' 실천을 언급하며 "홍콩은 이미 전 세계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가 됐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여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앞으로 홍콩은 더욱 번영하고 안정된 곳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기대헀다.